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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백변특집 > 관람기 > 03 경전금곡연창회 관람기


      
날이 추웠다. 내리는 늦 가을비를 받으며 우리들은 홍콩에 도착하면 맞게 될 따뜻한 날씨를 상상하며 또한 저녁에 보게 될 무이찌에의 화려한 무대를 상상하며 달음박 치는 가슴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3시간 30분이라는 비행시간이 흡사 우리가 살아온 날들 보다 더 길게 느껴졌으니...

첵랍콕공항의 도착을 알리는 기장의 멘트가 있은 후부터 비행기는 구름층에 휩싸여 심하게 몸부림 쳤다. 훤히 보여야 하는 홍콩섬의 고층 건물로 녹색 앞바다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몽환 속을 헤엄치고 가는 듯 구름 속을 날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홍콩에 혹시 비가 내리고 있지는 않은 가하는 걱정을 하게 만들었다. 비가 내린다면 분명 상당히 곤란 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서 말이다. 홍콩에도 역시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잠시 그치는 것 같다가도 폭우가 내리 듯 쏟아지는 아열대 지방 특유의 습성에 오늘 저녁을 어떡할 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비속에서 가방과 함께 우산도 없이 한참을 씨름하고서야 드디어 호텔에 안착할 수 있었다.
가슴 졸이며 몇 달을 기다려 오던 시간이 점점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음을 주위의 모든 상황들이 증명해 주었다. 우리의 왕 대장 희영언니를 만나 그 카리스마를 실감하며 또 홍콩 친구를 만나 표를 받고 나머지 금액을 계산해 주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콘서트 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시계는 벌써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우리는 아매가 혹시나 공연장으로 들어갔을 까 하는 걱정에 서둘러 발걸음을 돌렸다. 홍함 체육관 앞에는 벌써 십여 명의 취재진과 팬들이 몰려와 진을 치고 있었다. 나는 그 중의 한 무리에게 무이찌에가 도착했냐고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였다. 우리는 한숨을 돌리며 서둘러 준비해간 플랜카드 [梅艶芳韓國歌迷會 THE MUI KOREA]를 난간에 걸어 놓고 카메라를 준비하고 무이찌에가 도착했을 때 외칠 문구를 준비하고 나름대로 부산을 떨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교통이 밀려서 그런지 6시를 훌쩍 넘기고도 무이찌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앞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향을 피우고 있는 무당 아줌마가 고사 준비를 마치고 돌아간 지가 벌써 수 십 분이 흘렀고 향은 다 타고 재만 남았다.


   

우리들 중 누군가 말했다. “ 이거 아매 먼저 들어 간 거 아니야? ” 아니라고 아직 들어 간 것이 아니라고 부인을 하면서도 내심 설마 허탕 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여기저기를 기웃거릴 때 쯤 무이찌에의 흰 색 밴이 저쪽에서부터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냈다. 취재진과 홍콩 팬들은 벌써 무이찌에의 이름을 부르며 플래시를 터뜨리고....
먼 이국땅에서 말조차 통하지 않지만 우리도 여기서 물러 날 수는 없는 법. 강한 바람에 실려 오는 빗줄기를 맞으며 힘차게 무이찌에의 이름을 불렀다.
“사랑해요 매염방!! 사랑해요 매염방!! 사랑해요 매염방!!”
무이찌에는 우리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단 몇 초의 시간 이였지만 또한 멀리서 였지만 그녀에게서 풍겨지는 풍채는 우리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잠시 만남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에게 다시 주어진 것은 끈기 있게 그녀가 다시 나올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언제쯤 고사를 드리러 나오시려나.. 이제나 저제나 차가운 빗속에서 기다리는 우리들의 마음은 초초하기만 했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기고 들어간 지 30분이 지나도록 아직 고사를 드리지 않자 오늘은 혹시 고사 안 드리기로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무이찌에가 잠시나마 나와 줄 것을 기대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강한 빗줄기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게 만들어 줬다.
그 때 쯤 홍콩 TVB오락 대조사에서 우리에게 간단한 인터뷰를 청해왔다. 분명 한국팬클럽이라는 노란색 바탕의 붉은 글씨가 새겨진 플랜카드를 바리케이드 앞에다 떡 걸어 놓고 한국어로 열심히 떠들어대는 우리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이색 적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홍콩 스타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멀리 한국에서부터 날아오는 팬들의 숫자가 급격히 감소한 지금, 무이찌에의 모습을 보기 위해 온 한국 팬들의 숫자는 나날이 들어 나고 있고 그런 모든 상황들이 무이찌에와 취재진들에게 상당히 어필했던 모양이었다. 어디서 왔는가, 모두 한국 사람인가, 언제 왔는가? 등등을 묻고 나는 나름대로 그들의 질문에 성심껏 답했다. 무이찌에의 외국 팬들은 대게 화교들. 그들은 언어가 통하고 무이찌에가 부르는 노래나 멘트를 모두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순수한 한국인들. 언어가 통하지 않고 그녀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이찌에를 찾고 있고 또한 그녀가 부르는 노래를 정확히는 아니지만 제법 비슷한 발음으로 흥얼거릴 줄 알지 않는가. 무이찌에는 이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다. 그러기에 그녀는 우리 한국 팬들을 절대 경시 여기지 않았다.

드디어 고사를 드리기 위해 무이찌에가 공연장으로 나왔다. 그녀가 기도하는 사이 혹시나 부정이라도 탈까 우리는 기도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동서남북사방을 향해 두 손 모으고 기도 하는 무이찌에를 보며 우리도 마음속으로 그녀가 하루속히 건강을 회복하도록 또한 콘서트를 무사히 마치도록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끝낸 무이찌에가 팬들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동안 무이찌에를 향해 품어왔던 한국 팬들의 간절한 사랑을 담아 옆에 있는 홍콩 팬들이 기절할 정도의 엄청난 표호를 질렀다.
“사랑해요 매염방!! 사랑해요 매염방!! ”
우리 달랑 7명의 목소리가 홍함 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무이찌에는 고개를 돌려 손을 흔들어 주고는 다시 공연 준비를 위해 총총히 체육관으로 향했다. 실로 짧은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몸속의 에너지를 모두 빼낸 듯 뱃가죽이 등에 붙을 만큼 심한 시장기와 피로가 몰려 왔다. 공연을 보기 전에 진을 다 빼서야 안 될 일. 우리는 든든한 왕 대장 희영언니가 쏘시는 저녁을 맛있게 먹으며 다시금 전력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복병이 있었으니 그것은 좌석의 3,4 이런 식으로 떨어져 배치가 된 것이다.

   

잠시 후 보기에도 부담스러운 지휘자 선생이 입장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화려한 보석이 잔뜩 달려 있는 고풍스런 드레스를 입고 노래를 부르는 무이찌에의 모습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했던 가면무도회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무이찌에의 가창력은 실로 대단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나와 정수리를 진동시키며 뿜어 나오는 중저음의 목소리는 ‘ 과연 당신이야 말로 진정한 여왕입니다 ’ 라는 말을 우리들의 가슴 속에 새겨 넣었다. 화려한 조명과 의상 그리고 2만 관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또한 엄청난 가창력....그 모든 것을 말로 설명하기에는 우리의 언어가 너무 부족하다. 무이찌에는 이번 콘서트에서 자신보다 먼저 떠난 친구들을 위한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특히 꺼꺼의 노래를 부르며 무이찌에는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잘 챙겨주라며 눈물을 떨어뜨리는 그녀의 모습에 우리의 눈시울도 함께 붉어졌다. 
첫날 공연에서 우리는 우리 한국 팬들의 저력을 뿜어낼 수가 없었다. 너무나 아쉬웠지만 내일 공연장을 뒤집어 놓을 것을 서로 다짐하며 전의를 불태웠다.
둘째 날 다행히도 제법 잘 보이는 자리에 우리 7명이 모두 함께 앉는 자리였다. 한쪽 손에는 영아가 준비한 대형 태극기와 그리고 붉은색 글씨가 선명한 노란 플랜카드를 4사람이 함께 나눠 들고 아매가 이 쪽을 바라 볼 때 어떻게 플랜 카드를 들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나름대로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모두 홍콩 사람들에 비해 키가 그다지 크지 못한 편... 게다가 1차로 진치고 있는 기자들은 모두 남자들...그래서 보름이와 나는 철제 바리케이드 위에 올라앉아 양손 높이 플랜카드를 맞잡았다.

모든 정황으로 볼 때 곧 무이찌에의 흰 색 밴이 도착할 분위기였다. 기자들은 코앞에서 배 아픈 강아지마냥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어수선했고 이들의 분위기를 파악하며 무이찌에의 올 시간을 예측하는 팬들은 덩달아 바빠졌다. 결국 우리는 철제 바리케이드 위에 올라가 항시 대기 상태로 플랜카드를 하늘 높이 들고 목청을 가다듬고 있기로 결정을 내렸다. 보름이야 아직 어리다 치지만은 나야말로 이 적지 않은 나이에 그 아슬아슬한 자세를 하고서 무려 30분간을 곡예를 하자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진땀이 다 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30분간 쓰디쓴 고통을 참아낸 결과가 기쁨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멀리서 무이찌에의 밴이 천천히 체육관 후문으로 다가왔고 우리는 더욱 더 온 힘을 다해서 플랜카드를 높이 들었다. 영아의 손에 들린 카메라도 벌써 준비가 완료되었고... 이제 백변 기자 영아를 제외한 멤버들이 “ 사랑해요 매염방!!”만을 외치면 되는 것 이였다. 무이찌에가 밤하늘에 어지럽게 터지는 수많은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차에서 내릴 때 우리는 온 힘을 다해서 플랜카드와 함께 구호를 외쳤다. 짧은 순간 이였지만 무이찌에는 어제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양손을 모두 흔들어 답례를 보냈다. 짧은 기쁨도 잠시.. 우리에게 주워진 것은 또 다른 인내의 시간이었다. 고사를 지내기 위해 나오는 무이찌에는 다시 기다려야 하는 것. 우리는 서로에게 아까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고 고사 지내러 나오실 때 확실하게 다시하자며 서로 굳은 다짐을 하였다. 약 40분이 흐른 시각, 홍함 기차역 큰 시계가 7시를 가리킬 때 쯤... 여전히 모자와 트레이닝복을 입은 무이찌에가 천천히 수행원들을 데리고 고사를 드리기 위해 후문으로 다시 나왔다. 순간의 짧은 환호에 뒤이은 긴 기도시간...기도를 드릴 때 소리를 지르면 부정이 탄다고 해서 우리는 가슴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무이찌에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억지로 꾹꾹 참고 있었다. 이번 콘서트의 무사성공을 비는 기도는 여느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무이찌에는 정말 진심을 다해 기도를 하였고 그것을 보는 우리들의 마음도 역시 숙연해졌다. 동서남북을 향하여 큰 절을 올린 무이찌에가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보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우리 한국 팬 들이였다. 단체로 맞춰 입은 검정색 티에 붉은 글씨가 어둠 속에서도 선연했다. 그리고 무이찌에의 정면에서 바리케이드를 타고 앉아 높이 든 플랜카드는 맞바람에 힘에 의해 더욱 높이 올랐다. 무이찌에는 우리를 바라보며 비가 와서 플랜카드를 들지 못해 우리의 왔음을 알리지 못했던 어제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너무나 기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플랜카드의 문구를 하나씩 천천히 읽곤 마치 유치원생이 흔드는 손 인사처럼 너무나 열심히 양손을 다 흔들어 주는 무이찌에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더욱 큰 환호를 보냈다. 나머지 홍콩 및 대만 중국 말레이시아 팬들의 "무이찌에!!"라는 외침은 우리의 "사랑해요!!"에 가려 전혀 들리지 않았다. 수십 명의 팬들이 있었지만 또한 거리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보게 된 무이찌에를 보려고 보려 든 홍콩 시민들도 있었지만 마치 그 자리는 우리를 위한 자리 같았다. 그렇게 무이찌에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환한 미소와 함께 열심히 손을 흔들어 보였다. 무이찌에에게 우리가 왔음을 확실하게 알렸다는 기쁨에 또한 우리에게 보내준 환한 미소에 기뻐하며 바리케이드로 인해 고문당했던 엉덩이와 다리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고 강한 바닷바람에 꽁꽁 얼어버린 두 손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무이찌에가 공연준비를 위해 돌아가고 난 뒤 여러 기자들이 몰려와 우리의 사진을 찍으며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그러나 나는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단지 우리가 외국에서 온 이색적인 팬들이라고 비춰지기 보다는 무이찌에를 정말 정말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이 먼 곳 까지 왔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려 애를 썼다. 이번 좌석은 확실했다. 무이찌에가 고개를 약간만 오른 쪽으로 돌려도 바로 뒤집어 지고 있는 우리 한국 팬들을 볼 수 있을만한 그런 자리였고 우리 7명 모두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좌석이었다. 우리는 플랜카드를 꺼내 서로의 무릎에 길게 펼쳐 놓았다. 여차 하면 들을 태세로 말이다. 사실 뒷자리에 앉은 홍콩 팬들에겐 좀 미안했지만 그 사람들은 공연 중 무이찌에가 이 쪽으로 쳐다봐도 별 반응이 없었다. 공연을 알리는 멘트가 나오고 보기에도 부담스러운 지휘자 선생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지구를 쳐들어 온 외계 괴물 같이 생겼음. ‘파란 해골 13호’라는 별명이 어울릴 터.)
「몽리공취」를 시작으로 무이찌에는 다시금 화려한 무대의 시작을 알렸다. 우리는 타이밍을 아는 사람들, 또한 예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다. 무모하게 분위기도 모르고 소리를 빽빽 질러 무이찌에의 콘서트를 망쳐 놓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중간 중간 무이찌에의 멘트가 쉴 때 혹은 다른 멘트로 넘어가는  짧은 순간 우리는 플랜카드를 흔들며 외쳤다. "사랑해요!!" 주옥같은 그녀의 노래는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이번 공연의 백미는 역시 클래식 반주와 재즈 악단의 환상적인 조화였다고 할 수 있다. 교향악단의 풍성하고 무게 있는 연주와 어우러진 무이찌에의 목소리는 정말 관중들로 하여금 진정한 음악의 장인이 존재함을 느끼게 하였다.
이번 공연이 발라드 곡을 위주로 편성되어 있는 만큼 무이찌에가 옷을 갈아입는 시간에 그녀의 후배들과 제자들이 몰려 나와 관중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무이찌에의 댄스곡 10여개를 연달아 부르며 흥을 돋웠다. 우리는 망설일 것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이와 직업 모두를 잊고 우리는 "매염방 한국 가미회"라는 플랜카드 아래 하나가 되었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플랜카드를 흔들며 무이찌에의 댄스곡들을 함께 열창하기 시작했다. 비록 정확치 못한 발음일 지라도... 우리는 그 동안 한국에서 무이찌에를 향해 품어 왔던 사랑과 열정을 한꺼번에 쏟아 냈다. 가슴이 뜨거웠다. 그 무대는 마치 한국 팬들을 위한 무대 같았다. 7명의 한국 팬들이 2만 명의 홍콩 팬들을 잠재우는 순간이었다. 초맹과 하운시는 우리 한국 팬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며 뜨거운 박수와 함께 모두들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무이찌에가 일본 인형 같은 복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우리들 쪽으로 천천히 다가 왔다. 먼저 다가간 곳은 무대의 가장 오른편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었고 다시 무대 쪽으로 걸어 나올 때 쯤 우리는 달려 나가 무이찌에를 외쳤다. 영아는 태극기를 높이 흔들며 무이찌에의 이름을 불렀고 무이찌에는 태극기를 바라보더니 환한 미소와 함께 우리를 가리키며 『 Korea(코리아)!! 』 라고 말했다. 이에 더욱 흥분한 우리들은 더욱 큰소리로 "무이찌에 사랑해요!!"를 외쳤고 뒤이어 무이찌에는 우리를 향해 또렷이 말했다.
『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무이찌에, 용케 작년에 배운 단어를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

무이찌에의 한마디에 우리는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중앙에 서 있는 무이찌에를 약간 내려다보는 위치였던 우리들은 태극기와 함께 "사랑해요!"를 연발하였고 정말 몇 명되지도 않은 숫자였지만 우리가 외치는 “ 사랑해요!!” 는 긴 꼬리를 달고 멀리 멀리 공연장 가득 퍼져나갔다. 우리의 너무나 뜨거운 반응에 무이찌에는 사뭇 놀란 듯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며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공연의 흐름을 막을 까 우리는 이쯤에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너무나 아쉽지만 제자리로 돌아갔다. 게스트 양영기가 나오고 무이찌에는 그녀와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제 계속 홍콩 가미회 쪽을 바라보며 노래를 하던 무이찌에가 오늘은 홍콩 가미회의 반대편에 앉은 한국 팬들을 바라보며 노래를 해주었다. 우리들의 입에선 절로 “ 고마워요!!” 란 외침이 흘러나왔다.
무이찌에가 마지막 곡을 끝으로 손을 흔들며 무대 아래로 모습을 감추자 우리는 벌떡 일어나 체육관을 벗어나 무이찌에가 나오는 출입구로 달려갔다. 순간 둔탁한 소리가 선봉에서 달리던 내 뒤통수 뒤에서 울려 퍼졌고 잠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뛰던 걸음을 멈추었다. 백변 카메라맨 영아였다. 그만 카메라를 들고 비탈길에 파인 홈에 걸려 넘어지고 만 것....
우리는 좋은 자리를 사수하여 무이찌에를 친히 접견하기 위해 피 흘리는(?) 우리의 동료 영아를 버려두고 올 수 밖에 없었다.  “ 피 잘 닦고 천천히 와라. ” 송수민 회장의 한마디에 잠시 달리던 걸음을 멈추었던 우리는 다시 냅다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바리케이드 앞에서 다시 플랜카드를 걸고 무이찌에가 나오기 까지 우리들의 기다림이 다시 그 첫 페이지를 열었다. 오직 무이찌에이기 때문에 온 몸의 뼈를 진동케 하는 강한 비바람을 맞으며  행복한 기다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부상 입은(?) 동료 영아가 괴로운 비명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피를 닦을 만한 휴지도 약도 없었지만 무이찌에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기 위해 영아는 다시 등치 큰 기자들 틈바구니에 작은 몸을 끼어 넣었다. 그리고 보름이와 나는 플랜카드를 드는 철저한 사명을 다시 한번 확인한 채 거센 비바람에도 불구하고 난간위에 걸터앉았다. 모든 상황은 준비완료였다. 잠시 후 우리가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앵콜 공연을 본 홍콩 팬들이 떼거지로 몰려 나와 한국 팬들이 血로써 사수한(?) 자리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 팬들은 서로간의 두터운 협동심과 강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무사히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다. 무이찌에의 무대에 섰던 게스트들이 하나 둘씩 밖으로 나오고 허지안과 초맹은 우리 플랜 카드를 보고 다시 한번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무이찌에가 곧 나올 것이라고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잠시 후 무이찌에가 드디어 모습을 들어 내셨다. 홍콩 팬들은 그 전에 우리에게 말했다. 무이찌에를 직접 만날 수는 없을 거라고.. 이번 연창회에서는 팬들을 만나주지 않고 체육관에서 나와 바로 차에 올라탔다면서 우리에게 플랜 카드를 들고 난리를 쳐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실을 달랐다. 무이찌에는 우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환한 미소와 함께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무이찌에를 뜨겁게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랑을 한번도 들어 낸 적이 없었다. 아니 기회가 없었다. 먼발치서나마 그녀의 모습을 그녀의 그림자를 한번이라도 보기를 희망했던 한국 팬들이 얼마나 많은가. 10여년을 가슴 속에 담고 있던 무이찌에에 대한 사랑은 한순간에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무이찌에에게로 뿜어져 나갔다. 수백 명에 달하는 홍콩 팬들의 외침 소리는 우리들의 “ 사랑해요 매염방!! 사랑해요 매염방!! ” 에 가려져 들리지 않았다.  무이찌에는 어제와는 달리 곧바로 우리들이 플랜 카드를 들고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무이찌에가 나오는 출구로부터 또한 그녀의 차가 대기 하고 있는 곳으로부터 다소 멀리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우리들에게로 다가와 주었다. 순식간에 많은 홍콩 팬들이 몰려들었고 질서 정연하게 서 있던 줄은 금방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들 역시 오늘 이외에 무이찌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미리 준비해간 선물을 무이찌에에게 건넸고  미소와 함께 선물을 받아 주었다. 순간 수많은 홍콩 팬들이 준비해 온 선물을 쏟아 냈지만.... 무이찌에는 그들에게 인사만 건넨 뒤,  차에 올라탔다.  무이찌에의 차가 콘서트 장을 출발하자 우리는 잽싸게 방향을 바꿔 그녀의 차가 지나갈 보도블록 끝으로 달려갔다. 마지막 까지 손을 흔들어 주고 싶었던 것. 우리는 플랜 카드를 흔들며 차를 타고 지나가는 무이찌에에게 인사를 하였다. 모든 것은 성공적 이였다. 우리는 무이찌에에게 사랑을 확실히 전했다는 기쁨으로 인해 거의 제정신들이 아니었다. 피곤은 밀려 왔지만 이 날을 어찌 그냥 보낼 수 있겠는가.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겼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맥주를 사들고 호텔로 들어온 우리들은 잠시 샤워의 시간을 갖고 (하루 동안 흘린 땀방울로 7명이 밀폐된 공간에 절대 모일 수 없었기 때문...)  왕 언니의 방으로 보였다. 모두 자연스레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오늘의 성과를, 이 기쁜 결과를, 우리들 모두 이토록 뜨겁게 열광하며 무이찌에를 웃음 짓게 만들어 주었던 오늘의 이 아름다운 열매를 길 가는 누구라도 붙잡고 실컷 자랑을 늘어놓고 싶었다. 끝없이 수천 번을 되 읊어도 아름다운 오늘의 이야기를 우리는 새벽이 다가올 때 까지 기쁨에 넘쳐 서로를 격려하며 다짐하며 되새기며 그렇게 보냈다. 


   

하지만 우리들의 표는 어제가 마지막이었고 더 이상 참석할 수가 없었다. 못내 아쉬움을 달래며 다시 한번 그 공연장에 들어가길 간절히 희망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나름대로 홍콩을 관광하며 시간을 보낸 후 다시금 약속 장소인 홍함 체육관 무이찌에 출입구 앞에서 만났다. 시간은 아직 5시, 아직도 2시간이 넘게 남았지만 홍콩에 온 목적에 충실해야 할 것임을 스스로에게 일깨우며 오늘의 계획을 확인하였다. "비록 공연장에 들어갈 수 없으나 무이찌에가 도착할 때 또 고사를 드리러 나올 때 어제 보다 더 열광적으로 환호하자. 그리고 무이찌에 공연 끝나고 나오는 시간에 맞춰 다시 홍함으로 돌아오자." 무이찌에를 기다리던 과정은 이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오후 7시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서 무이찌에는 공연 준비를 위해 분장실로 들어갔고 우리들은 잠시 한숨을 돌리기로 했다.
무이찌에의 꺼꺼 레슬리가 그렇게 사랑했다는 홍콩의 야경을 보러 우리는 찬 저녁 바람을 뚫고 빅토리아 피크로 향했다. 한참을 법석을 떨고 나서 저녁 10시 40분 우리는 홍함 체육관에 다시 돌아왔다. 사실 무이찌에가 공연을 마치고 나오기 까지는 아직도 한 시간이 넘게 남았지만 우리는 좋은 자리를 차지해야겠다는 일념 하에 맞바람을 등지고 끈기 있게 무이찌에를 기다렸다.
어느새 공연장의 음악이 잦아들었고 우리는 긴 기다림을 알리는 신호에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더욱 기쁜 일 또한 더욱 안타까운 일은 잠시 뒤에 일어났다. 홍콩친구들이 뛰어나와서 어디 갔었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야경을 보러 갔다 왔다고 무슨 일이냐며 그들에게 되물었다. 홍콩 친구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아까 울 수가 있냐며 무이찌에가 우리 한국 팬들을 찾았다는 것이었다. 무이찌에는 어제 그 난리를 피우던 한국 팬들이 보이지 않자 처음에는 광동어로 그래도 대답이 없으니 영어로 “ Where is Korea?" 우리를 찾았던 것이었다. “ Where is Korea?" 라고 무이찌에가 우리를 찾자 홍콩친구들은 오늘 공연장에 들어오지 못했다며 대답했고 무이찌에는 『 방금 문 앞에서 봤는데? 』 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홍콩 팬들은 표를 구하지 못했다고 대답해 주었다고 한다. 잠시 머리가 멍해진 우리들은 서로 안타까움과 놀라움과 그 자리에 없었던 것에 대한 회한이 뒤섞인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서로를 붙잡았다. 비록 그 자리에 없어 무이찌에의 부름에 큰 소리로 대답하지 못했지만 우리들은 이미 무이찌에의 뇌리에 “ 매염방 한국 가미회의 뜨거운 열정.”을 확실히 심어 주었던 것이 분명했다. 잠시 후 무이찌에가 나오셨고 우리는 종전 보다 더욱 큰 함성으로 그녀를 맞았다. 그녀는 문을 나서자마자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르치며 못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무이찌에에게 우리가 표를 구하지 못해 콘서트 장에 들어 갈 수 없었다고...너무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곤 태극기를 붙인 선물을 건넸다. 무이찌에는 선물을 가슴에 안고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차에 올랐다. 무이찌에의 차가 하버 터널로 들어가기 전까지 우리들은 끝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아쉬움이란...... 무이찌에가 2만 명의 관중 앞에서 우리를 찾았는데.... 대답을 해 줄 수 없었던.... 그 회환을 안고 우리는 12시가 넘은 시각에 맥주를 한 캔 씩 끼고.... 그 기쁨과 그 아쉬움과 그 희망을 밤새 노래했다.
마지막 날.


   

우리에게 마지막이란 단어는 참으로 가혹했다. 무이찌에를 두고.. 아픈 무이찌에를 두고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시 표가 없어서 콘서트 장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전보다 더 뜨겁게 무이찌에를 환송했다. 그녀의 모든 행동에 눈을 맞추며 무이찌에의 이름을 외쳤다.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우리는 차마 공연 장 앞을 떠나지 못했다. 많은 기자들이 말하길 어제 무이찌에가 너희를 찾았는데 어째서 그 자리에 없었느냐는 질문을 했었다. 우리는 아쉽지만 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고 대답했고 그들은 이내 이해한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우리는 암표라도 몇 배의 가격을 주고 구입할 의사가 있었지만 그나마도 전혀 없었다. 홍콩 친구들에게 암표를 구할 수 있으면 10배의 가격을 주고라도 사겠다고 말했지만 대답은 절망적 이였다. 이 공연은 너무나 가치가 있기 때문에 어떠한 암표도 판매가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홍콩의 암표 상들 역시 공연을 전부 관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난히도 찬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공연장 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 것만이 비록 직접 공연을 관람하며 힘을 불어 넣어 줄 수는 없었지만 뒤에서나마 무이찌에가 무사히 공연을 치르도록 간절히 기도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무이찌에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우리 쪽으로 나타나셨다. 그 때 무이찌에의 몸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다는 보도를 낸 기자들로 인해 잠시 인터뷰를 가지고 우리 쪽을 향해 다가 왔다. 나는 사실 무이찌에가 우리를 향해 출입문에서부터 사선으로 슬그머니 다가 올 때부터 「 우리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요!! 」 라고 쉬지 않고 외치고 있었다. 무이찌에는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들 사이로 우리 한국 팬클럽 모두에게 눈을 맞추며 악수를 해주었다. 그리고 내 앞으로 다가와 멈추어 섰다. 무이찌에는 내 눈을 바라보며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해보라는 눈빛을 보냈다. 나의 이마에는 맞바람에도 불구하고 간절함의 땀이 흐르고 있었고 간절한 나의 외침이 속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 무이찌에!! 우리 내일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몸조심하세요!!!!」 무이찌에는 앞으로 나와 있는 내 손을 잡으려 손을 내밀었고 그러자 옆에 있던 어떤 팬이 그 손을 덥석 잡아 버렸다. 무이찌에는 그 팬의 손을 놓더니 파랗게 얼어 있는 내 손을 잡아 주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 당신도 조심해서 잘 가세요. 몸 건강하고.. 내년에 또 만나요. 』
내 손을 놓고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점점 눈앞이 흐릿해 졌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큰 소리로 다시 외쳤다.

「 사랑해요!! 」 무이찌에는 다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무이찌에가 차에 오르고 출발하자 우리는 방향을 얼른 바꾸어 태극기와 플랜 카드를 흔들며 그녀의 차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 까지 흔들어 주었다. 무이찌에는 마지막 콘서트에 참석한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보내는 뜨거운 환호성에 가슴 벅차 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봐 주며 악수를 건넸다. 그녀는 아직 보지 못한 우리 한국 팬클럽을 그리고 언젠간 한번 꼭 찾아 가겠다고 한 한국 팬클럽과의 약속을 기억하며 우리 대표를 통해 먼 이국에서도 늘 변치 않은 사랑을 보여 준 모두에게 감사를 전했다.

2만 관중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달랑 7명이 내지르는 한국어에 무이찌에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2만 관중 속에서도 7명의 빈자리를 느끼며 우리를 찾았다.
이 모든 것이 이제부터 다시는 찾아 올 수 없는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지만...
우리는 늘 기억하며 늘 회상하며 늘 꿈꾸면서 무이찌에의 빈 자리를 채워가길 원한다.

무이찌에.. 비록 그녀의 개인 시간은 멈추었을지라도 우리 한국 팬클럽의 마음속에 무이찌에는
오늘도 다가올 10월 10일 41번째 생일을 향하여 그 힘찬 발걸음을 계속 옮기고 있다.



AnitaMui Korea Fanclub   
- written by Shir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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